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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좋은글사전

어떤 사랑이야기

by 한준협 2023. 2. 10.

사람을 무엇을 먹으면서 살아가는가?

사랑을 먹으며 사랑하는 사람

미움을 뱉으며 살아가는 사람

오장육부가 뒤틀리고 내장이 송두리째

쏟아져 나올 것만 같은 증오를 토하면서 죽어간다.

 

사랑은 안타까운 것이다.

 

사랑은 안타까운 것이기에 긴장감을 가져다준다.

긴장하기에 한숨을 쉬고 눈물을 흘리며 기다리고

잠 못 이룬다.

 

사랑은 사람의 사람다움의 표현이다.

이 세상에서 과연 사람만큼 복잡 미묘한 존재가 있을까

얽히고설킨 사람과 사람의 삶

삶은 사랑을 낳고 미움을 낳고 끊임없이 얽히고설킨다.

그러기에 사랑은 무한한 미로를 헤매는 안개와도 같은 것이다

 

사랑은 기다림이다.

어두운 다방 창가에 앉아 있는 앳된 소녀

소녀는 사람을 기다린다.

소녀는 사랑을 기다린다.

소녀는 길고도 약한 한숨을 쉰다.

소녀는 사랑을 애타게 숨 쉰다.

왜?

사랑은 소녀의 삶이기에.

삶은 두 개의 머리를 가진 괴물이다.

삶은 무엇인가

괴물은 "삶은 사랑이다"라고

검붉은 혀를 날름거리면서 답한다.

삶은 무엇인가

괴물은 "삶은 미움이다"라고

허옇게 소태 낀 혓바닥을 날름 거리며 말한다

 

소녀는 어두운 창가에 앉아 30분을 기다렸다.

사랑의 30분

소녀의 얼굴은 핏기를 잃어가고 숨결이 점차

가빠진다. 

소녀의 눈매에는 먹이를 노리는 뱀눈처럼

가느다랗게 독기가 어린다. 소녀는 손톱으로 성냥개비를

토막 내기 시작한다.

 

한 개비 두 개비 성냥개비는 산산조각으로

부서진다.

소녀는 사랑을 토막 낸다.

소녀는 미움을 토막 낸다

 

 

삶은 긴장을 필요로 한다.

그러기에 나는 2년 만에 만난 아내를 바라보며 

온몸을 영혼의 구석구석을 힘껏 조이는 것 아닌가?

나의 아내와 내가 폭발하는 순간 긴장의 폭발,

사랑의 환희, 사랑의 웃음, 사랑이 스치고 지나간 눈망울,

호수보다도 잔잔한 숨결을 느낀다.

 

그러나 사랑은 미움을 토한다.

사랑의 풍선이 부풀 대로 부풀어 터져 버리면 

풍선 쪼가리들이 여기저기 흩어지기 마련이다.

 

미움, 증오, 역겨움, 구토, 새벽녘 길거리 너저분한 오물들

입석버스 안에서 화장기 짙은 젊은 여인이 손으로

입을 틀어막아도 손가락 사이로 비집고 튀어나오는 오물

버스 안에 진동하는 악취, 

오물을 덮은 신문지 위로 번지는 물기

사랑이라는 풍선의 찌꺼기는 미움을 낳는다

미움의 쪼가리는 치우는 사람 하나 없이 

오래오래 사람의 모퉁이에서 굴러다닌다.

 

소녀는 발을 동동 구르기 시작한다 

사람을 기다리기 한 시간

사랑을 기다리기 한시간

소녀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다.

손바닥으로 산산이 부서진 성냥개비를

바닥으로 쓸어버린다.

소녀는 사랑을, 사람을 그리고 미움을

손바닥으로 쓸어버린다

 

소녀는 갑자기 하늘을 날아가고 싶다.

가을의 푸른 하늘을 

고추잠자리가 맴도는 초가을 코발트 빛 하늘을

 

사랑은 수수께끼 인가

 

사랑과 미움이 삶의 마당에서 숨바꼭질을 한다.

꼭꼭 숨어라 어디 어디 있니?

찾았다 찾았다 너는 사랑이지?

틀렸다 틀렸다 나는 미움이다.

찾았다 찾았다 너는 미움이지?

아니 나는 사랑이야.

 

사랑하기만 할 수도 없고

미워하기만 할 수도 없는 것이 삶이다.

그러기에 삶은 아름답고 추하며

어느 누구도 쉽사리 풀을 수 없는

영원한 수수께끼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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